작성자 : haja
작성일시 : 2012-03-09 1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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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어준에 대해서는 호불호가 많이 갈리죠. 극단적으로 싫어하는 사람도 있고, 높이 평가하긴 하지만 과거의 디워‧황우석 건에 대해서는 까고 넘어가기도 하고, 김어준의 리버럴한 측면을 좋아하는 사람도 있고 김어준의 민족주의‧국가주의 측면을 좋아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이렇게 자신의 주장과 행적에 관해 호불호가 갈리는 건 김어준만 그런 건 아닙니다. 여권, 야권, 보수, 진보 진영의 주요 논객, 일선 정치인, 의제 설정자들이 대부분 그런 평가의 갈림 속에 있습니다. 그 중에 김어준 보다 나은 사람도 있고, 더 건강한 이념, 더 뛰어난 식견을 보여주는 사람도 여럿 있을 겁니다.
 
하지만 그런 내용적인 차별성 이전에 김어준이 담론 환경의 다른 경쟁자들과 비교하여 더 현명하게 처신하는 점이 한 가지 있다면 그건 SNS 혹은 인터넷 시대의 실시간 소통방식에 대한 신중한 접근이라고 봅니다.
 
김어준은 무려 1998년에 딴지일보를 창간했습니다. 막 자리 잡은 한국 인터넷 문화의 히트 상품 1세대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한국에서 웹진 내지 전문 인터넷 매체의 성공모델을 처음 제시한 사람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현존 인터넷 사이트 중에 딴지 보다 먼저 생긴 거 몇 개 없지요. 그런 사람이니 인터넷을 통한 실시간 소통, 빠른 피드백 그리고 SNS나 웹2.0 식의 개념에 대해 대단히 적극적일 거 같고, 그의 담론 소비자들과 빠르게 소통할 거로 생각하기 십상입니다.
 
그러나 실제론 아니죠. 김어준은 다들 아시듯 SNS하지 않습니다. 지금도 피쳐폰 쓴다고 하죠. 당연히 트위터나 페이스북 같은 것도 하지 않습니다. 블로그에 수시로 이런 저런 글을 올리며 누리꾼들과 교류하지도 않습니다. 당연하죠. 블로그도 없으니까. 더 나아가 블로그 이전부터 존재했던 게시판 문화와도 거리를 둡니다. 김어준이 게시판에서 게시물과 덧글의 형태로 친목과 공론의 경계를 오가며 활동 하는 거 보신 적 있나요?
 
김어준은 그런 거 안 합니다.
 
인터넷시대의 언론인으로 그 자신이 인터넷 언론의 첫 모델을 제시한 사람임에도 다른 논객과 스타들과 유명인사들과 달리 인터넷 게시판과 SNS에 섣불리 뛰어들어 즉흥적이고 가벼운 소통에 매몰되지 않도록 철저히 거리를 둡니다. 글의 문체나 표현은 가벼워도 소통 방식은 가볍지 않습니다.
 
특정 사안에 대한 김어준의 의견은 다음 회의 팟캐스트 방송이 업데이트 된 후에나 알 수 있고, 글로는 기간을 두고 올려지는 언론사나 딴지의 정규 기고글을 통해서 접할 수 있을 따름입니다. 빨라야 2~3일 느리면 일주일 혹은 그 이상. 그리고 김어준은 이런 공식적인 채널에 집중할 뿐 가벼운 트윗, 덧글, 게시물, 블로그 포스트 같은 걸로 김 빼고, 액세서리 붙이고 하지 않습니다. 이 점은 딴지일보가 처음 돌풍을 일으킬 때나 지금이나 다르지 않습니다.
 
그 호흡의 간격, 피드백의 속도… 김어준은 인터넷 시대 이전 종이 신문/잡지와 TV방송으로 소통하던 시절의 ‘간격’과 ‘속도’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심지어 김어준은 자신의 의견을 종이책으로 전파하는 비중을 여전히 높게 잡는 인물이기도 합니다. 연보나 활동사항을 보면 알 수 있지만 최근 몇 년에 한정하더라도 김어준의 글은 인터넷 보다 종이책으로 선보인 분량이 더 많을 겁니다.
 
이 점에서 적어도 김어준은 ‘중요사안에 대한 공인의 의견을 트윗으로 날리는’ 다른 유명인들보다 현명합니다.
 
SNS와 게시판 여론은 어제가 다르고 오늘이 다릅니다. 어제 죽일놈 이던 게 오늘은 찬사의 대상이 될 수도 있습니다. 며칠 사이에 “이대로 가면 민주당 망한다. 진보당도 별거 없다”거나 “이렇게 다시 새누리당이 1당이 되는 구나”하는 식는 여론이 게시판을 지배하기도 하고, 다시 며칠 사이에 뒤집어지기도 하고 그러는 게 인터넷입니다.
 
그러나 아무리 인터넷이 발전하고 소통의 속도가 빨라져도 ‘사람’과 ‘현실’이 인터넷의 속도만큼 휙휙 바뀌는 건 아니죠. 대선은 여전히 5년 마다 하고, 총선은 4년 마다 합니다. 4월 11일까지 일희일비하며 부침개를 수십 번 뒤집어봐야, 지금 지지정당 정해놓고 정치관련 글 싹 닫은 다음에 잠자코 투표장 가는 거와 비교해서 딱히 나을 것도 없습니다. 정치뿐입니까. 월드컵도 올림픽도 여전히 4년 마다 하죠. 올해 한국시리즈에서 한화 이글스가 우승하려면 6개월의 정규시즌과 한 달의 포스트시즌을 거쳐야 합니다. 게시판에서 팬들이 재촉한 다고 그게 더 빨라지진 않습니다. 아카데미상을 1년에 한 번 주는 것도 바뀌지 않습니다.  아기가 나오는 데는 여전히 10개월이 걸리고, 대학교는 4년간 다니고, 군대는 2년간 복무합니다. 누군가에게 기회를 줬을 때, 무언가를 평가하려 할 때 기다리며 두고 봐야 하는 시간은 옛날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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