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찾아도 없어서 녹음해놓고 듣고있음
Answer
DJ때 내수경기 진작 시킬려고 엄청나게 부활시켰죠. 한도 1천만원이상 올리고 사망자까지 카드발급 받게하구요. 이 모든것을 정부가 조장했습니다. 맞습니다. 그리고 LG카드 사태 다 기억 나시죠? 얘네들이 10년전에 나라종금으로 대한민국 떠들석하게 했던 넘들이 또 다시 국민세금으로 충당시켜서 살려냈습니다. 대기업들은 망하지 않기 때문에 제대로 된 경영을 안합니다. 중소기업 죽이기, 협력 파트너라고 하면서 신기술 빼내기 언론조작 등으로 살아남고 있죠. 얼마전 현대기업 회장이 주가조작 했지. 근본적인 시장경제를 말아먹는것들이 바로 이런 대기업들입니다. 망할때 제대로 망하게 해야지 그래야 두 번 다시 나쁜짓 안하는데, 우리나라는 이런기업이 망하면 나라 망하는데 어쩌지 하는 쓸데없는 걱정 합니다. 미안하지만 이런 기업은 나라 걱정 별로 안합니다. 또 이런 기업 살리는 이유도 정치자금때문이지 국민경제 신경도 안씁니다. 오히려 정치인들은 국민들이 가난해서 정치에 신경 안쓰기를 바라는게 지배자들의 속성이죠. 신용카드 수수료는 엄청나게 비싸죠. 신용카드 많이 쓰면 그 수수료를 부담해야 하는 기업들이 결국 물건값을 올리게 되서 오히려 가정경제에 부담이 됩니다. 그런데 이런말은 아무도 안하죠. 카드사가 망하면 안되는 광고주이기 때문이죠. - 사과식초님
New York Tri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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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광개토왕을 주인공으로 한 "태왕사신기"가 방송되고 있습니다. 사극이라기 보다는
판타지 무협물로 보는 게 옳겠지만, 그래도 엄연히 실존 인물을 주인공으로 한 드라마인
만큼 역사적 배경 같은 것들을 인지하고 보는 것도 괜찮을 것입니다.


  광개토왕은 고구려의 제19대 왕으로 고국양왕의 아들이며 이름은 담덕(談德)입니다.
18세에 왕위에 올라 39세에 세상을 떠났으므로 재위 기간은 22년(391~412)입니다.
타계한 후 3년째인 갑인년(414)에 비로소 왕릉에 모셔지게 되었고 아울러 유명한
광개토왕릉비도 세워지게 되었는데, 이 3년간 시신은 빈전에 모셔져 있었을 것으로
여겨집니다. 덧붙이자면 광개토왕이 왕릉에 모셔진 날이 9월 29일입니다. 물론 음력
이지만, 다소 억지를 부려 의미를 부여하자면 숫자상으로는 바로 오늘입니다.


  "삼국사기"에 따르면 광개토왕은 "어려서부터 체격이 웅위하고 뜻이 고상하였다"고
합니다. 그러나 "삼국사기"에 기록된 왕치고 체격 안 좋고 성격 안 좋다고 하는 왕은
별로 없으니 정말 그랬는지는 모르는 일입니다. 무릇 역사 책에 남겨진 왕에 대한 묘사라는
것은 정형돈 같은 이는 체격이 웅위한 영웅으로, 유재석 같은 이는 뜻이 고상한 성군으로
표현되기 마련입니다.


  하지만 이 왕이 전쟁을 좋아했고 또 이 방면에 재능도 있었다는 것은 사실입니다.
"삼국사기"와 "광개토왕릉비"에 그 기록이 남아 있는데, 아쉽게도 "삼국사기"에
실려 있는 광개토왕 항목은 A4 1장 분량, "광개토왕릉비"에 실린 광개토왕의 훈적 내용은
A4 2장 분량 정도에 그칩니다. 아주 소략하지요. 그 때문에 학계에서는 아직도 광개토왕의
군사활동 대상이나 규모, 성과에 대해 갑론을박 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다만 확실히 말할 수 있는 것은 당금 한국인들이 가지고 있는 광개토왕의 이미지가
상당 부분 부풀려진 측면이 있다는 것입니다. 광개토왕이 정복 군주라는 것은 틀림이
없고, '광개토(廣開土)'라는 시호가 어울렸던 인물이었던 것도 사실이지만 광개토왕이
광활한 중국을 정복했다든지, 대륙을 호령했다든지 하는 이미지는 정말이지 부적절한
것입니다.


  일단 광개토왕 재위 시절의 중국은 오호 16국 시대로, 자기들끼리 견제하고 다투느라
굳이 동쪽 변방에 위치한 고구려를 신경쓸 이유가 없었습니다. 광개토왕 당대에 고구려와
국경을 맞대고 있었던 중국 쪽 국가는 선비족의 나라인 후연(後燕)과 후연이 망하고
생긴 북연(北燕)입니다. 후연의 경우는 한때 화북 지역에서 꽤 위세를 보였으나
북위의 공격에 호되게 당하여 수도를 함락당하고 광개토왕대에 이미 요서 지역으로 쫒겨
와 화룡성을 수도로 삼는 등 퇴락한 상태였고, 그 뒤를 이은 북연의 경우 역시 그다지
강국이라고 할 수 있는 나라는 아니었습니다. 이중 북연의 경우는 고구려와 비교적
외교 관계도 좋아 전쟁을 벌인 일이 없습니다.


  따라서 광개토왕대에 고구려와 중국의 싸움이라면 곧 후연과의 싸움인데, 기이하게도
"광개토왕릉비"에는 이 후연과의 싸움이 일절 기록되어 있지 않습니다. 능비를 보면 백제나
백제와 연계된 것으로 보이는 왜와의 싸움이 주이고, 별 볼일 없어 보이는(나라도 아니기
때문에) 거란 부족, 숙신 부족, 명맥만 간신히 잇고 있는 것으로 보이는 동부여를 소탕한
것이 훈적의 전부입니다.


  우리도 이력서를 쓸 때 흔히 하는 짓이지만, 없는 일도 있다고 하거나 별 것 아닌 것도
대단한 것으로 포장하는 것이 보통인 비문에서 광개토왕이 상대했던 적 중 가장 강력했던
후연과의 싸움 내용이 없다는 것은 이상한 일입니다. 그렇다면 이렇게 생각해 볼 수도 있
겠습니다. 비문을 만든 고구려인들에게 후연과의 싸움 내용이 광개토왕의 훈적을 자랑하는
데에 적절치 않은 주제라 판단이 되었거나, 다시 말하자면 광개토왕이 후연과의 전쟁에서
별로 득을 보지 못했거나, 아니면 득을 보았더라도 비문에까지 남겨 자랑할 수준에 이르지
못 하는 미약한 것이었다고 말입니다. 물론 단정하는 것은 아니고 그냥 그렇게
생각해 볼 수 있다는 것입니다.


  여하튼 광개토왕과 후연과의 싸움 내용은 "삼국사기"의 것을 통해 살펴 보아야 하는데,
여기에서도 특별한 내용은 없습니다. 주로 후연이 공격해 들어오면 성을 방패 삼아
열심히 막아서 물리치는 식입니다. 재위 11년과 13년에는 공세적인 모습을 보여
후연의 본거지인 요서 지역까지 침투해 주요 성을 함락시키는 전과도 올리지만,
뒤이은 기사에서 전장이 요동 지역으로 나오는 것을 보면 함락시킨 요서 지역의 성을
계속 점유하고 있었던 것 같지는 않고 바로 철수한 것으로 여겨집니다.


  광개토왕이 후연과의 대결을 통해 획득한 성과라고 한다면 요동 지역을 완전히
고구려의 판도에 넣었다는 것 정도입니다. 그나마 양 웬리가 이젤론 요새 함락시키듯
절대적인 열세를 이겨내며 파천황적 업적을 세운 것이 아니고, 그의 아버지 고국양왕이
한 번 함락시켰다가(이때가 오히려 후연의 전성기였습니다) 도로 빼앗긴 것을 되찾아 와
굳히기를 한 것입니다.


  게다가 딱 여기까지, 광개토왕은 더 이상의 어떠한 영토 욕심도 내지 않습니다.
암군(暗君)을 만나 나날이 쇠약해지고 급기야 정변이 일어나 스스로 망해 넘어가는
후연의 위기를 이용하고자 하는 의지조차 보이지 않습니다. 그냥 중국 쪽 나라들이 성질이
안 좋아 우리를 건드리지만 않으면 다행이다 라는 식의 태도입니다. 그러다 보니
후연이 망하고 북연이 들어서자마자 바로 사절단을 보내서 친하게 지내자는 태도를
취하게 됩니다. (물론 새로 들어선 북연의 왕 모용운(고운)이 고구려계였다는 것도
그 이유였겠지요. 오래 전에 고구려를 침략한 모용씨가 잡아간 고구려 사람이
그쪽의 귀족이 되었고 그 집안이 공을 세워 '모용'이라는 왕성까지 하사받았는데,
결국 정변으로 왕까지 된 것입니다. 그러나 고운은 얼마 안 가 다시 한족(漢族)인
풍씨에게 나라를 빼앗깁니다. 풍씨가 왕이 되었지만 북연은 국호를 바꾸지 않고,
고구려도 친밀한 외교 관계를 유지합니다.)   


  이것이 많은 사람들이 굳게 믿고 있는 '대륙을 호령한 광개토왕의 중원 정복 활동'의
전부입니다. 당시 갈갈이 찢겨져 있던 중국에서도 마이너에 속하는 작은 나라와 국경선을
가지고 옥신각신 하다가 결국 약간의 이득을 본 것이 다입니다.


'그래도 요동을 먹은 게 어디냐, 그것만 해도 대단한 것이 아니냐'고 할 수도 있겠지요.
물론 그렇게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요동은 중국 입장에서 보면 어디까지나 변경이고
눈에 별로 들어 오지도 않는 쪼가리 땅입니다. 심지어 대륙이 통일된 수당대에는 '요동은
멀고 생산물도 없는 척박한 땅이라 가지고 있어 봤자 관리하느라 재정만 낭비되고, 차라리
버리고 신경 안 쓰는 게 이득이다'라는 소리까지 듣는 불쌍한 동네입니다.  
    

  그러니 광개토왕이 요동을 점령했다는 '업적'을 내밀면서 중국을 향해 '대륙 정복'이니
'불세출의 정복 군주'니 떠드는 것은 야랑자대(夜郞自大)라고 비웃음을 받기 딱 좋은
행동입니다. 참 안타까운 것은 우리나라 대다수의 사람들이 광개토왕에 대해 가지고
있는 생각이 거의 그런 야랑자대 수준이라는 점이지요. 그러니 이쪽 분야에 약간의
지식을 가지고 있는 저로서는 민망하기도 하고 난감하기도 하고 그렇습니다.


  광개토왕의 업적은 역시 한반도 쪽에서 그 빛을 발합니다. 한때 군사적으로 고구려를
압박했고 그의 할아버지인 고국원왕의 목숨까지 잃게 했던 원수국 백제를 무력으로 완전히
압도했던 것입니다. 이는 당대 고구려인들에게 대(對) 후연전보다 훨씬 큰 인상을 남긴 업적
이었을 것입니다. "광개토왕릉비" 훈적조의 주제가 대 백제전이라는 것도 그 때문일 테구요.
비유하자면 월드 시리즈에서 뉴욕 양키즈를 완봉으로 짓밟은 보스턴 레드삭스의 뿌듯함 정도
되려나요.


  광개토왕 이전에 고구려와 백제는 황해도 즈음에서 대치하고 있었는데, 광개토왕의
군사적 성공으로 황해도와 경기도 북부가 고구려의 판도에 들어오게 됩니다. 광개토왕의
정복 지역이 그 이하로 내려갔던 것 같지는 않습니다. 광개토왕이 백제 수도인 한성을
압박해 백제왕의 항복을 받아내기는 했지만 한성을 아예 함락시키거나 하지는 않았고,
그 이후로도 오랫동안 한성은 백제의 수도로 기능을 했으니까요.


  학자에 따라서는 광개토왕의 정복지로 충청도 지역까지 포함시키기도 합니다만,
광개토왕 당대에 그러했다는 증거가 딱히 있는 것은 아닙니다. 한강 이남에서 고구려군이
사용한 산성이나 병영의 흔적도 매우 드물게 발견되구요. 다만 단양의 온달산성이나
충주의 중원고구려비의 존재가 이들 지역에 고구려가 진출했다는 증거가 될 수 있는데,
광개토왕 당대 보다는 한성을 함락시키고 백제가 웅진으로 천도하게끔 만든 장수왕대
이후의 결과물로 보는 게 옳습니다.


  이후 광개토왕은 신라의 지원 요청을 받아 5만의 병력을 보내 왜를 격파합니다.
이때 고구려군의 원정은 가야 지역까지 이어졌는데, 금관가야가 주도했던 전기 가야연맹의
붕괴 원인을 여기에서 찾곤 합니다. 최강자에게 붙어서 그보다 약한 인근의 다른 강적을
제거한다는 신라의 '삼국통일 전략'의 원형이 이때 이미 나타난 셈이지요. 이 원정을 계기로
신라도 고구려에 신하국을 자처하게 되어 고구려는 명실상부한 이쪽 동네 최강자가 되었고,
광개토왕은 신권 지폐에 들어갈 인물 도안을 놓고 역대 위인들과 자웅을 겨룰 정도로
후세에 길이길이 남을 전설이 되었습니다.


  고대사를 전공한 학자들조차도 광개토왕 당대의 고구려가 '동북아 최강자'였다는
식의 말을 쉽게 입에 올리곤 합니다. 여기에서의 '동북아'가 요하의 동쪽 및 한반도를
가리키는 협의의 것이라면 과히 틀린 말이 아닙니다. 하지만 실제로는 적잖은 사람들이
'동북아'를 중국 대륙까지 포함한 광의의 개념(현재의 동북아 개념)으로 받아들이고
또 의도적으로 그렇게 사용하기도 합니다. 그러니 중국 쪽과의 싸움이라고는 이미
전성기를 지나 움츠러든 후연과 투닥거린 것 밖에 없는 광개토왕이 중국 대륙 전체를
압도하고 우리나라 역사상 유일하게 중국을 발 아래 굽어보았던 영웅인 것처럼 여겨지는
이상현상이 나타나곤 하는 것입니다.


  광개토왕의 업적을 애써 폄하하거나 과소평가 하고자 하는 생각은 없습니다. 다만 이쪽
방면을 공부하는 사람으로서 고구려나 광개토왕에 대해 일반에 퍼져 있는 인식의 거품이
불편한 것이 사실이고(사실 정도의 차이이지 환단고기 믿는 사람들과 위대한 고구려에
가슴 뿌듯해 하는 사람들이 완전히 다른 차원의 사고를 가진 것도 아닙니다), 이러한
거품이 문학이나 드라마 등 역사 외의 영역까지 퍼져 재가공되고 있는 상황이 썩 바람
직해 보이지도 않습니다.


  판타지를 판타지로만 받아들이고 즐기면 그것으로 좋겠는데, "주몽"이나 "태왕사신기"
제작진들의 인터뷰를 보면 판타지를 만들어 내는 당사자들이 자신들의 작업물을 '동북공정'에
대응하는 엄숙하고 의기로운 '역사 바로잡기' 행위로 인식하고 있는 것 같아 황당함을
느끼기도 합니다. 빈약한 사고로 역사성과 실재성의 무게를 어설프게 흉내내는 판타지보다
캐릭터와 이야기 자체의 재미만으로 자부심을 느끼는 판타지의 존재를 바래 봅니다. 아울러
치밀한 고증으로 당대의 삶을 재현하는 진지한 고대 역사물이 등장한다면, 그것 또한 고마운
일일 테지요.

몇 년 전에 참여연대랑 환경련에서 운영하는 느티나무라는 카페 운영자가 모 인터넷 신문에 인터뷰를 한거 봤는데 먼저 이 느티나무는 주로 시민단체들 성명발표할 때 자주 애용한다. 근데 원래 목적은 환경련하고 참여연대의 재정에 좀 보탬이 될까해서 운영하는 거다. 주 고객도 회원들이고.

근데 문제는 느티나무가 오픈하고 나서 오히려 초기에는 적자를 봤다는 거다. 그 이유가 뭔가 하믄 첫째가 세금 때문이다.

세금을 100%내니까 적자를 면하기 어렵다는 건데 느티나무는 안국동 일대에서 차 팔고, 밥 팔고, 돈까스 팔고 등등하는 일반 카페들보다 5배에서 많을 때는 8배까지 세금을 내거든, 그래서 참여연대의 한 회계사가 세금을 정산하는데, 세무소에서는 신경이 무지 쓰인다네 왜? 다른 업소들 눈치보느라고.

문제는 뭐냐믄 그 지역의 다른 업소들은 느티나무가 눈엣가시라고, 어느날 세무소에서 좀 악랄하게 세금을 정산하믄 어떻게 되겠냐고?

세금 양심적으로 많이 내믄 세무서에서는 표창장 이라도 줘야 하는데 오히려 부담스러워하는 게 한국사회의 고질병이다. 만약 일반업자가 세금 많이 내다가 망하믄 그뿐이다.

근데 시민단체에서 운영을 하다 보니 뭐라고 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시민단체에서 탈세를 할 수도 없고, 문제는 한국에서 세금을 꼬박꼬박 내면서 장사를 한다는 소리는 망할려구 작정을 했다는 소리라는 거다.

그뿐인가? 느티나무가 환경련과 함께 운영하는 곳이다 보니 식자재를 전부 우리농산물을 쓴다고 거기다 유기농제품 그니까 자재비가 일반 카페보다 많이 든다. 그렇다고 가뜩이나 적자보는데 비싸게 받을 수도 없고.

결론은 대한민국에서 정직하게 장사하믄 망한다는 거다. 그 말은 다시 말하믄 우리 주변에 널린 수많은 장사꾼, 즉 자영업자들 중에서 세금 제대로 내는 넘 없다는 거다. 머 재벌들도 탈세하는데.

참고로 동네 호프집도 한 소득세가 매출대비 7%정도 세율일걸, 룸살롱은 하루매출을 대개 150만원 정도 신고하고, 2001년에 걸린 언론사들은 매출대비 2%도 안되는 세금 내기 싫어서 탈세한 거고.

2000년에 국민의 정부는 사회안전망에 대한 법률을 우여곡절 끝에 통과시켰다. 근데 그러고 나서 어떤 일이 벌어졌느냐 하믄...

기초생활 수급대상자였던 한 노인이 자살을 했다. 그 이유는 이양반이 전에는 소위 생활보호대상자라고해서 한 21만원 정도를 지급받고 취로사업에서 일도하고 해서 근근히 먹고 살았는데..

기초생활보장법이 생기면서 보조금이 7만원으로 줄었는데 그 이유가 같이 사는 10대 손자가 학교도 안다니면서 중국집에서 아르바이트하는 게 동거가족 중 소득이 있는 걸로 파악이 돼서 그렇게 됐다네.

아니 남들 다 다니는 학교도 못다니면서 중국집에서 아르바이트해서 할아버지랑 먹고사는데 그 몇푼 안 돼는 보조금을 줄이나?

왜 이런 일이 발생하는가 하믄 기초생활보장법 논쟁 하던 당시 좃선하고 딴나라당애들이 좌파정책이라고 얼마나 게거품을 물었는지 다 기억난다.

그러니 정작 통과되는 과정에서 요렇게 조렇게 손보다보니까 입법취지가 무색할 정도로 변했고 거기다 예산배정에서 삭감되믄 일선 동사무소나 구청에서는 수급대상자를 축소하게 마련이라고, 왜? 줄 돈이 적으니까.

그래서 복지가 그나마도 잘 안되는 거다. 문제는 울 동네만 해도 수급 대상자도 아닌데 부양할 자식들 다 있으면서 이런 저런 안면으로 용돈삼아 보조금 받는 늙은이들이 꽤 있었다는 거다. 요즘도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이게 뭐냐믄 일단 돈은 받으믄 좋다는 식이다. 그니까 정부돈은 다 눈먼돈이란 인식이 팽배해있거든, 거기다 세금은 내기 싫다.

만약에 지금 당장 정부에서 세금 꼬박꼬박 내도 장사가 가능할 정도로 소득세율을 합리적으로 조정한다믄 과연 세금이 걷힐까? 글구나서 간접세 비율을 축소하고 직접세 중심으로 세제개편하믄? 국민들의 양심을 믿고? 공무원들은 그럴 배짱없을 걸?

대한민국이란 나라는 좀 깊이 파고 들어가믄 알면 알수록 이민가고 싶어지는 나라 맞다. 문제는 정치권, 정부 관료재벌들만 부패해서가 아니고 부패가 전 국민적으로 일상화 됐다는 점이다. 급행료 몇푼 주는 거 정도는 부패라고 느껴지지도 않을 정도고..

거기다 뻑하믄 부패를 비판해서 먹고사는 언론이나 지식인사회는 한술 더 뜨거든, 외환위기라는 게 어떤 사회적효과가 있었냐믄 대한민국의 밑바닥이 다 드러난 거 거든.

외환위기 이후에 구조조정 엄청 했다. 근데 문제는 직장에서 나온 사람들 너무나두 창업했다. 주로 식당이나 호프집 같은 업종에서, 외환위기 전에 흥청거릴 때도 한국에서 식당을 개업하믄 3년 안해 80%가 망했다고. 식당업이 얼마나 전문성을 요하는 업종인데?

근데 너무나두 식당을 개업하믄 어찌되겠나? 그나마 먹고살던 기존의 장사꾼들 까지 힘들어진다고, 경기는 위축됐는데 공급이 늘어났으니 당연한 거 아냐? 거기다 택시업계에도 많이 들어갔다. 결과는 마찬가지지 머.

퇴직자들이 모아놓은 자산을 성급하게 투자해서 날린 이유는 불안감하고 직업의식 부재다. 한국은 적어도 내가보기에는 아직도 직업의 귀천이 존재한다. 전 근대적인 사고가 아직도 남아있으니  사장 명함이라도 있어야 된다는 심리적 압박감들을 느끼지.

그러다보믄 먹는장사 하구 물장사 안 망한다카더라는 미신에 미쳐서 많이들 손해보게 된다. 혹시 식당 할 사람 있으믄 주방장 만큼은 자격 있는 주방장 쓰기 바란다.  글구 한국은 식자재가 비싸서 식당하기 좋은 나라 아니다.

내 주변에는 대기업 간부하다가 구조조정 되고나서 오토바이 택배하면서 그래두 버티는 사람도 있었다. 근데 그거 결정할 때 무지 힘들었다고 하더구먼 마누라 까지 탐탁찮게 생각했으니.

경제의 펀더맨탈 너무 좋아할 거 없다. 한국사회가 이렇게 된 이유는 전근대적인 관념조차도 정리가 안된 상태에서 가치가 존재하지 않는 경제성장을 해왔기 때문이라고.

그니까 오로지 수단방법 안 가리고 돈만 벌믄 되는 세상을 만들어서 그 밑바닥이 드러나는 거라고. 근데 이제 와서 이걸 어떻게 바꿀까?

사회복지? 다 좋다. 그럼 세금내라, 근데 일반 자영업자들 세율을 조정 해달라고하고 양심적으로 자율신고해라, 물론 난 기대안한다.

글구 간접세 대폭 줄이고 소득세, 상속, 증여세, 특히 부동산하고 금융소득에 대한 종합과세를 강화해라. 글구 사채업자들은 살길이 없을 정도로 때려잡고, 여기에 국민들이 동의해서 세금 양심적으로 낸다믄 그다음에는 운영만 투명하게 하믄 된다.

그러다보믄 자연스레 사회보장세, 즉 건강보험이나 국민연금 부과 역시 조정이 되겠지? 그러믄 유럽정도는 안돼도 최저 생계비 보장수준의 복지실현이 가능하다. 단 세금이 제대로 징수될 경우에 한해서.

그다음에 전직교육을 대폭강화해라. 일테믄 40대에 직장에서 떨려나믄 다른 직업을 가질 수가 없다고. 이런 사람들이 살아 남으려믄 최소 2년 정도는 집중 교육을 받아야 된다고. 특히 창업교육을 대폭 강화 해라, 앞으로는 노동자보다 자영업자가 많아지는 정보화사회니까.

글구 교육이 끝나믄 취업이 100%되게 인력수요에 대한 공급을 90%정도만 해라 나머지 부족한 인력은 기업에서 알아서하게하고, 글구 교육받는 동안에는 최저생계비지급해라.

그러믄 일단 노사분규가 줄어든다. 그니까 기업도 좋다. 게다가 필요한 인력을 정부에서 주로 교육시켜서 공급을 하믄 기업의 교육비용도 줄어든다. 정부에서 이 정도 해주믄 기업도 노조도 비정규직 문제에대해서 보다 유연해질테까 해법이 보일 거다.

근데 문제는 다 좋은데 국민들이 합의를 해줄까? 이런식으로 사회적 시스템을 만드는데 몇 년 걸릴까? 최소 한 10년 정도는 고생해야 되는데 위대한 대한민국 국민들이 과연 동의를 해줄까?

난 힘들다고 보거든 왜? 한국사회는 '믿을 넘이 없는 세상'이니까. 누가 그걸 해? 대통령이? 정부가? 아무도 안 믿어주는데? 현실은 냉정한거다.

처음으로 돌아가서 느티나무처럼 양심적으로 장사하믄 좋은 꼴 못본다. 그거 한국 국민들 다 아는 사실이거든 이건 경제문제가 아니다. 가치의 문제지

귀가가 좀 늦었습니다. (차를 가지고 나가서 술은 안 마셨습니다)

그냥 맴돌고 있는 생각 몇 가지를 떠오른 김에 적습니다.
좀 직설적이고 편견으로 가득하고 싸가지 없게 들리겠지만 양해해주시길.


1. 여자분들도 콘돔 갖고 다니세요.  미성년자라도 웬만하면 갖고 다니시고요. '콘돔 안 쓰는 나쁜 무식한 남자랑은 안 해' 내지는 '내가 원나잇스탠드를 할 일이 있겠어?'라는 마음가짐을 가지는 것은 좋은데 사람 일이란 언제 어떻게 될지 모릅니다. 정확히 말하면 숫처녀도 생전 처음 본 남자랑 잘 수가 있고 무엇보다 '콘돔 안 쓰는 무식한 남자'는 여관에 들어가봐야 정체가 탄로납니다. 그때는 이미 늦습니다.


2. '피임은 남자가 준비해야 하는거 아니야?'라는 생각 가진 여성분들, 생각 고쳐먹으세요. 피임은 남자가 준비하는게 맞겠지만 그렇게 개념 있는 남자가 대다수는 아닙니다.

저는 애인 없고 아무런 건수가 없을 때도 거의 항상 가방에 콘돔이 들어 있습니다. 하지만 가방 안 갖고 지갑과 핸드폰만 들고 나간 날 사건이 터질 수도 있는 겁니다!

그리고... 자기 인생이 박살날 수도 있는 사안인데 '흥분하면 눈에 보이는게 없는 늑대 같은 남자놈들'이 혹시나 가지고 있을지도 모르는 양식, 상식, 이성, 분별력, 참을성 따위에 자기 운명을 거시렵니까?


3. 물론 누구나 콘돔 사용하지 않고 성관계를 가진 적은 여러번 있을거에요. 위험하고 어리석은 일이지만 솔직히 사람 살면서 꼭 이런 일 아니더라도 뻘짓 몇번은 저지르게 마련이죠. 대부분 그러려니 하지만 한국 수준의 과음은 피임 없는 섹스 못지 않게 어리석고 위험한 일이죠.

(좀 예전 일인데 게시판에 한 남자분이 질외사정을 했다면서 임신가능성을 묻는 글에 모두들 질타하는 댓글이 달린 적이 있었습니다. 그 남자분이 잘못 하셨지만 그렇게 질타하는 것은 보기 안 좋더군요).

하지만 이게 '습관화' 되면 안 된다고요! 


4. 당연한 얘긴데... '콘돔 쓰기 싫어하는 남자'는 헤어지지는 못하더라도 최소한 따끔한 맛을 보여서 버릇 고치세요. '내 남친은, 내 전 남친은 콘돔을 거의 안 써'라는 말을 하는 여자분들 보면 남자보다 여자한테 화가 더 납니다. 당연히 이런 남자는 무뢰한이지만 그런 습관을 유지하도록 방조하는 여자분들도 책임이 있습니다. 좋아한다고 괜히 쓸데 없는데서 마음 약해지지 마세요. 남자가 삽입하고 싶은데 못 하게 한다고 해서 그 남자 죽지 않습니다. 그 남자의 알량한 순간적 성욕 채워주려다 인생 *됩니다.
( * = 모 파시스트 일간지 이름의 첫음절)


5. 물론 임신중절 같은거 대수롭게 생각하지 않는 여자분들이라면 지금까지 제가 한 말 비웃고 무시하셔도 좋습니다.


6. 당연한 얘기지만 남자들은 제발 콘돔 좀 쓰자고요! 그리고 여자들이 수학 못한다는 편견을 여기서는 따라야 합니다. '계산 확실하게 했어. 오늘은 절대 안전해!'라는 말을 속편히 믿지 말라고요. 경우에 따라 콘돔을 안 쓸 수는 있지만 피임에 '절대'는 없습니다.


7. 우리나라 사람들은 왜 그렇게 '애매한 관계'가 많죠? '애매한 관계'의 유형도 너무 많아서 이루 헤아릴 수 없지만 무슨 얘긴지는 다들 아실거에요.

좋으면 자주 보고 그러다 자기 감정에 확신이 들면 대쉬하고 사귀고 키스하고 자고... 그게 그렇게 어려운건가요? 남자든 여자든 맘에 들면 제발 대쉬하세요. 사귈 생각 없으면 자주 보지 말고. 사귈 생각 없고 자주 볼거면 서로 확실히 선을 긋고 친구 이상의 마음은 가지지 말고요.

저는 저놈의 '애매한 관계'가 이성교제와 성관계에 대한 보수적 인식이 여전히 남아있었던 제 세대로 끝날 줄 알았어요. 그때는 유행가 가사의 태반이 '죽도록 사랑했지만 사랑한다고 말도 못했던' 얘기였죠. 근데 요즘 젊은 분들도 별 차이가 없어보이더군요. 대체 왜 그런겁니까?



8. 결국... 대쉬나 고백을 못하고 몇달째 망설이는 분들 대체 왜 그러는겁니까? 오래 끌면 무슨 가능성이 올라갑니까? 처음 3주 안에 상대가 나한테 매력을 못 느꼈는데 300일이 지나면 매력을 느낄 것 같습니까? 단언컨대 애매한 관계 1년 후의 고백보다는 입닥치고 길거리 헌팅이 성공확률 더 높습니다.


9. 제가 무지 좋아하는 영화지만 '해리가 샐리를 만났을 때'가 정말 사람 많이 버려놓은 것 같습니다. 물론 처음엔 친구였는데 어느 순간 이성으로 보이는 경우도 있어요. 하지만 초창기부터 이성으로 보이는데 친구 행세하면서 질질 끌지는 말라고요. 왜 다들 그런 변태적 관계들에 빠져 있는겁니까?


10. 특히 그놈의 혼자 키우는 사랑, 고백 한번 못하고 지나는 사랑... 그건 사랑이 아닙니다. 괜히 낭만주의적 감정에 빠져 이상화하지 마세요. 그냥 겁쟁이의 자기합리화일 뿐입니다. 사랑은 둘이 하는거라구요.


11. 그러니 제발 '자기 기준에서 이상한(이성적) 분위기의 만남'이 시작된지 기간으로 3-4주 이내, 만남횟수로 6-7회 이내에 어떻게든 결판을 보세요. 어리버리할 때 후다닥 업어가는게 제일 효과적입니다. 그리고 성추행을 권하는건 아니지만 몸통이 아닌 얼굴 부분의 스킨쉽으로 고백을 대신하는 것은 죄악이 아닙니다.


12. 이건 상당히 미묘한 부분이라 이렇게 흥분한 지금 제 정신상태에서 명료하게 설명하기 어려운데... 남자분들! 고백 또는 대쉬할 때 말이죠. 용기 없이 '니가 알아서 결정해줘'하는 식으로 고백하는 것만큼 비루한 일도 없습니다. 최소한 자기 감정에 확신은 있어야죠. 근데 자기 감정에 확신 있는게 상대에게 두려움을 주거나 우습게 보일만큼 박력 있는거랑은 무관하거든요. 더구나 스토킹과는 진짜 아무 상관 없고요.


13. 대쉬/고백의 가장 중요한 것! 조금 이른듯한 타이밍입니다. '이 사람이 사귀자고 하겠다'는 짐작은 어렴풋이 하지만 '아직은 아니지. 몇 번 더 봐야 그런 말 하겠지'하는 순간에 슬쩍 기습적으로 얘기하세요. 김빠진 맥주 만들지 마시라고요.


14. 연애를 시작할지 말지 고민할 때를 포함해서 연애를 하면서... 비겁해지지 마세요. 비겁이란 건 두 가지가 있죠. 하나는 용기 부족이고 다른 하나는 스스로에게 정직하지 못한거요.

용기 부족은 앞에서도 얘기했는데 인생은 지르는겁니다. 한번 실패는 병가의 상사에요.

그리고 자신에게 떳떳하지 못한 것. 한국 남자들 연애하면서 숱하게 자신에게 애인에게 친구들에게 지껄이는 '나는 그 애를 행복하게 해줄 수 없어'라는 대사(번역 : 나의 학벌, 경제력 등 조건이 너에 비하면 너무 부족해)나 '내가 지금 중요한 시점이라 연애에 몰두할 수가 없어'(나 취직 준비, 고시 준비하느라 연애까지 하기는 힘들어) 같은 대사... 정말 비겁한 겁니다. 차라리 바람을 피는게 나아요. 이런 짓 하면 몇 년 후에 무시무시한 후회가 되어 돌아옵니다. 그 후회감을 감당하는 것보다는 학교 다니면서 알바 뛰면서 시험 준비하면서 연애질 하는게 훨씬 편합니다.


15. 정말 너무 당연한 얘기고 입이 아픈데 여자가 먼저 대쉬하는건 이상한게 아닙니다. 맘에 드는 남자 있으면 그냥 머리끄댕이 잡고 끌고와서 애인 삼으세요. 아무도 뭐라고 안 합니다.



p.s. 아직 나이가 어린 남자분들. 아시겠지만 현실적으로 한국 남성의 70퍼센트 이상은 결혼 이전에 매춘 경험(윤락여성 매수라고 해야하나요? 정확한 표현이 생각이 안 나네요)이 있습니다. 여기서 이걸 가지고 뭐라고 하고 싶진 않아요. 하지만 제대로 된 연애를 못 해봤고 한 명의 파트너와 지속적인 성관계를 가져보지 본한 상태라면 가급적 매춘부는 피하세요.

10대말 또는 20대 초중반, 평생 다시 못할 뜨거운 연애, 진정한 첫사랑을 할 때 이전의 매춘 경험은 무조건 해가 됩니다. 죄의식의 형태로 귀환할 수도 있고 매춘부들이 제공하는 말초적 쾌감에 중독되어 정신적 교감과 애정에 근거한 진정한 육체적 결합의 행복감을 못 느끼는 것일 수도 있어요. (여자가 좋건 말건 자기 성욕만 충족되면 끝인줄 아는 남자들 있습니다. 근데... 걔들은 인생도 모르는 것이고 섹스도 모르는 거에요).

죽이는 화장발에 쭉쭉빵빵 윤락여성과 섹스를 정 하고 싶다면 아저씨 된 후에 해도 늦지 않습니다. 어떤 식으로든 어린 시절의 매춘 경험은 인생에 도움이 안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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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종 날이선 직설화법과 가르치는 말투로 읽으신 분들을 불쾌하게 만들었다면 죄송합니다.



출처 : 네이버 아까짱님의 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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